HOYEON CHUNG

Criticism

The meaning of Hoyeon Chung’s work

Juwon Kim (art critic, independent curator)


As an artist who has a background in metal craft Hoyeon Chung’s previous work has been focused on technique and craftsmanship. Her recent work not only shows a new approach to materials, but also a search for a new language, one of days and people.


Her mixed media works seem much closer to art that expresses ones life rather than traditional craft. They are composed of Korean linen, rubber, old silicone, paper, tree bark, plastic, pieces of metal and other found objects. These materials carry meaning. Korean linen for example is sensitive, sophisticated and delicate. It is similar to human skin in that it changes with time. Changing with time like a day and people.


She explains a day or a person with materials that she has collected in that day. She communicates her personal experiences and emotions, ordinary days that she has had, relationships with people, expected or unexpected events. It can be confused, or clear, very delicate or rough, cheerful or painful.


This approach to her work started after her grandmother’s death. She is focused on the reality of being a woman who lives as a symbol of the traditional Korean way, like her grandmother. The death of her grandmother made her start to consider what makes ones life. Hoyeon Chung’s recent works are based on these ideas and her approach is growing and progressing.


Hoyeon Chung speaks about her work as “reflections of ordinary days, not special, everyday, like drawing a diary.” Her works are about others, others who have step into her days. She is not standing in the middle of her life, she is watching with female eyes.


Craftsmanship and technique are not the focus of these works. They are comprised of simple shapes emphasized with color like red, blue, yellow, natural color and painted fabric. Her wearable objects are titled with peoples last names like , , , . In this way her work references aspects of totemic and shamanistic ritual.


When we look at the works of a woman artist, we usually confine the artist to a wife, a mother, or a daughter and judge her works to be clumsy. However, it is not so simple with Hoyeon Chung. She does not seem to be offering a gesture as a romantic woman artist with her open and experimental attitude toward the everyday in which art and modern craft fail to reconcile. Today’s world of crafts is yet to be free from the concept of modern genre.


I saw the craftsman Hoyeon Chung in her emphasis on weakness over strength. In the open and understanding attitude that is direct, voluntary and inviting over limiting her crafts to a rigid definition, rationale and abstraction. For her, craft mean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everyday and the others, a repetitive, boring and unstable everyday, a life to which people adjust themselves every moment. Hoyeon Chung, through her crafts, invites them into her inner self to embrace them warmly.

정호연의 작업이 의미하는 것

김주원 ( 미학, 독립큐레이터 )


‘금속’ ‘공예’ 작가로서 활동해 온 정호연은 대부분의 공예가 그러하듯이 줄곧 매체의 기술적 혹은 기법적인 문제에 몰입해 왔다. 근래의 작업에서는 보다 확장된 의미에서 다양한 재료에의 탐닉과 그 속성을 자유롭게 탐구하고 몰입하되,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적 삶 속에서 창작행위와 언어, 매일(일상)과 타자, 그리고 관계의 의미를 묻고 있다.
일상적인 재료들을 자유롭게 활용한 장신구들로 집약되는 그의 작업들은 대개 공예의 전통적 틀에 부합 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삶과 포개지는 예술을 주창해 온 입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추억으로 시작되었다는 정호연의 근작들은 삼베를 주로 하여 고무, 색 바랜 실리콘, 종이, 나무껍질, 플라스틱, 금속조각 등등의 비규칙적인 콜라주로 이루어졌다. 삼베 등의 재료들은 민감하고 섬세함, 연약함 등의 여성성이 두드러지는 것들로 외부의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사람의 피부 같은 속성을 띤다.
여성성의 표상으로서의 이 같은 재료들은 작가가 자신의 환경과 그에 따라 날마다 달라지는 매일/타자와 관계한다. 이른바 일상이라는 그 ‘매일/타자와의 만남 혹은 만나지 않음’은 여느 사람들에게처럼 그녀에게도 우발적인 것일 수도 있고 밀접한 것 일수도 있다. 혹은 명료하기도 하고 복잡한 것, 미묘한 것이거나 투박한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것 일수도 유쾌한 것 일수도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 매일/타자와의 관계함은 실제적인 것이거나 혹은 그녀가 느끼는 주관적인 정서의 산물일수도 있다. 이 관계로부터 정호연의 근래의 작업들이 태어났으며 자라고 있다.
그것을 실현하는 데서 발생하는 문제들, 즉 공예가적 기술이나 기법, 심지어 형식적이며 미적인 문제들은 부차적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주목하고자 하는 ‘매일/타자와 관계’라는 문제의 실체가 여성으로서의 자각 이전의 할머니에 대한 자신의 기억과 여성으로서 떨칠 수 없는 동질적 성향이라는 점이다. 가부장적 구조가 주는 위협과 숙명적인 타자에 대한 끝없는 포용만을 태생적으로 품고 살았던 할머니의 좁은 어깨와 작은 키는, 모더니즘적 남성의 표상으로서의 예술가, 즉 추상적 이성을 지닌 젊은 ‘금속’ ‘공예’가 정호연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모습이었으리라.
‘할머니’의 죽음. 이는 그간 인식하지 못했던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 안에서의 끝없는 굴곡과 삶의 흐름을 주목하게 하는 계기이지 작가에게 할머니는 개인적 연민의 대상이나 가여운 존재로 읽히진 않는다. 작가에게 할머니는 ‘매일/타자’에의 관심을 촉발한 계기이고 실체인 것은 분명하나 강박으로서의 관념은 아니다. 이것은 더불어 여성으로서 홀로 서고자 하는 지독한 성취를 향한 욕망이나 살아남으려고 하는 결연한 의지 혹은 저항과도 무관하다.
그녀가 자신의 작업을 일컬어 ‘별로 특별하지 않는 매일... 그 일상... 그림일기’와 같다는 작가의 말처럼, 정호연의 작업은 ‘자신’에 중심이 있지 않다. 작가의 매일에 들락거리는 타자, 즉 ‘다른’ ‘아무개’들에 향해 있으며 그들에 대한 지극히 여성적인 ‘시선’이 그의 작업의 주제다. 그 타자들인 아무개들은 정호연의 장신구로서 때론 '김' , '강' , '이' , '최' , '할머니' 등의 성씨로 호명되어 형상화 되었다.
단순하지만 유기적인 면이 강조되고 있는 형상들은 때론 삼베 등의 재료가 지닌 무채색 그대로, 때론 붉거나 노랗거나 파랑 색 등의 색채가 강약을 달리하며 회화성이 강조되는 드로잉으로 덧씌워져 있다. 작가의 ‘시선’의 개입 때문인지 '강' , '이' , '최' , '할머니'에 대한 일상과 관계에 대한 미묘하고 공감적인 연대가 강조되고 있으며 그들 개별에 대한 섬세하면서도 관용적인 만남을 열어 놓고 있다. 그래서 일까. 그의 장신구가 토템적, 주술적 측면이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는 느낌.
우린, 여성작가가 예술세계를 대면할 때, 한 남자의 아내, 아이들의 엄마, 부모들의 자식으로서 세계를 객관화하는 방식에서 서투르다는 면박의 눈길로 흘겨봐왔다. 그러나 정호연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예술과 현대‘공예’가 쉽게 화해하지 못했던 ‘매일/타자’를 향해 열려있는 개방적인 그의 실험적 태도는 단지 낭만적 여성예술가로서의 제스추어는 아닌 듯하다.
나는 여전히 근대적 장르 개념에 포박되어 있는 공예계의 현실에서 힘보다는 연약함을, 결정론적이고 이성적이고 추상적인 필연성으로 규정하기보다는 즉각적이고 자발적이며 참여적 공감과 개방적 시선을 존중하는 작가 정호연에게서 공예가로서의 태도를 보았다.
공예는 그녀에게 ‘매일/타자와 관계’인 것 같다. 반복되지만 그래서 지루할수도 불안할 수도 있는 그 현실, 겉으로는 뜨겁지 않은 몸이지만 시간의 축을 따라 온도를 달리해가는 삶, 사람들. 그녀에게 공예는 그런 것들을 자신의 내부로 따뜻하게 불러들이고 보아주는 태도, 시선인 것 같다.